증평의 지명

HOME > 증평의역사 > 증평의 지명

증평군 산천

증평군 산천

대봉산 (大峰山)

대봉산[해발 355m]은 정기(精氣)가 가득히 흐르고 있는 증평 지역의 영산(靈山)이다. 대봉산은 두타산 정상과 TV송신탑 중간쯤에서 증평을 향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린 가파를 산줄기를 따라 약 800m 내려오다가 갑자기 촛대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이다. 송산3리 ‘송오리’나 미암4리 ‘대지랭이’에서 오를 수 있으나 경사가 급하다.

『여지도서(輿地圖書)』/『충청도읍지(忠淸道邑誌)』/『호서읍지(湖西邑誌)』/『충청도각군읍지(忠淸道各郡邑誌)』에서는 대봉산을 ‘금대야봉(金大也峯)’으로 표시하고 있으며, 이 산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했다. “금대야봉재현서십삼리이조두기기고천장상유용천세조기칙필우(金大也峯在顯西十三里離組斗起其高千丈上有湧川歲早祈則必雨)”. 즉 “금야대봉은 청안현에서 서쪽으로 13리에 있고, 뾰족하게 툭 튀어 올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, 높이는 1,000장[해발 300m]이다. 산 정상에는 샘이 솟아 흐르며, 가뭄이 드는 해에 기도를 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.”라는 뜻이다.

농업이 주산업이었던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농수관리 시설의 미비로 그 해의 풍/흉년을 하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. 비가 오지 않아 한해(旱害)가 드는 해이면 고을의 행정책임자[현감, 면장]가 대봉산에 올라가 기우제(祈雨祭)를 지냈다.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되었고, 가을이면 풍년이 들었다고 하여 그 고마움으로 이 산에 올라가 감사제를 올리기도 했다.

또한 이 산에는 8대에 걸쳐 장군이 나온다는 명당 묘 터가 있는데 여기에 묘를 쓰게 되면 묘를 쓴 자손들은 잘 되나 마을에는 큰 변이 생기거나 오랜 가뭄이 온다고 전해져 왔다. 1977년 7월에 증평들 들판에 곡식이 말라 죽어가고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들었다. 증평 지역 마을 사람들은 대봉산 명당 묘 터에 누군가 암장(暗葬)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고, 대봉산에 올라가보니 과연 명당 터에 봉분(封墳)도 없이 평장(平葬)으로 암매장(暗埋葬)한 흔적이 있었다. 이에 마을 사람들이 파묘(破墓)를 하자마자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가뭄을 면했다. 그 후에 유골(遺骨)의 주인이 충북 보은군에 사는 이 씨(李氏)로 판명되고 파묘(破墓)로 인한 시시비비가 법정으로 번지기도 했다고 한다. 또한 이 산에는 금(金)이 매장되어 있는데 이를 채광하거나 굴을 뚫게 되면 마을이 망하거나 행위자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구전(口傳)으로 전해오고 있다.

이렇듯 대봉산이 영산(靈山)이라는 것을 안 일본 관리들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대봉산의 정기(精氣)와 혈(穴)을 끊기 위해 대봉산 줄기 여러 곳에 쇠못을 박아 놓았다 한다. ‘대봉산’은 글자 그대로, ‘큰 봉우리로 된 산’이라는 뜻이다.